CINEMA

영화 '신세계'

ODDI 2017. 1. 28. 21:37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이자성과 미끼를 앞세워 모든 목을 치고 주무르려는 강과장. 그리고 진실을 알면서도 숨겨주며 선택권을 주는 정청과 제 무덤을 파는 일임을 알면서도 미끼를 물어버리는 이중구. 


정말 잘 만든 영화이다. 캐릭터들의 성격을 확연하게 보여주며 이자성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계속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다. 처음 봤을 때는 보는 사람까지 긴장하게 만들었으며 여러 번 보면 볼수록 각자의 캐릭터 입장에서 보게 만드는 영화이다.


담배를 통해서도 이자성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게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력은 말 안 해도 되고. 석회장 장례식에서 강과장과 이중구가 대립하고 있을 때 이중구 얼굴을 클로즈업 한 컷이 있었다. 그때 떨리는 박성웅의 얼굴근육을 보는데 큰 스크린으로 보니 떨림이 다 보여서 그 표정 보려고 한 번을 더 봤다. (총 세 번 봤는데 세 번째 본 이유는 엔딩 때 과거회상 씬에서 웃는 이정재 얼굴 보려고 또 봤다.)



많은 유행어를 낳은 정청. 마지막에 이자성에게 많이 힘들어 보인다며 선택을 하라고 하는데, 이자성이 산소호흡기를 대려고 하자 [만 분의 일이라도, 천만 분의 일이라도 내가 살아나면 나 감당할 수 있겠냐?]라고 말하는 정청. 정청의 그 말이 이자성이 선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연기를 하면서도 애드리브를 굉장히 많이 쳤다고 한다. 


(엘레베이터 씬에서 석무를 때리는 장면, 주차장 씬에서 같은 편을 공격하는 것, 뚜이부치라고 대사치는 장면들이 인터뷰에서 공개된 애드리브인데 정청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봉다리 어딨냐, 가짜인 게 티 난다며 발차기를 하는 것들도 애드리브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여담인데 정청이 첫 등장하는 공항씬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게 굉장히 챙피했다고 황정민이 말했다.)



보는 내내 긴장되던 창고 씬. 석무가 강과장이 이자성 마킹하려고 심어놓은 스파인데 신우(바둑선생)이 잡혀서 드럼통 안에 들어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이자성인데, 볼 때마다 대단하다 느끼는 거지만 긴장한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보는사람까지 덩달아 긴장하게 만들었다. 창고씬 보는 내내 기를 빨린 느낌. 


모든 걸 다 알고 있음에도 이자성을 눈 감아주는 정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촌동네에서 칼질하고 다녔을 때부터 함께한 사이여서 눈을 감아준 것일까, 만약 정청이 살아났을 때 이자성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굉장히 여러 스토리를 조합해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


석무가 자기 마킹한 거냐고 강과장을 몰아붙이는 씬에서 무너지는 자성이 안타까웠다. 계속되는 번복에도 불구하고 얇게 이어진 끈을 잡고 있었는데, 뚝 끊긴 느낌. 차라리 그냥 일찍 한 쪽을 선택했다면 편했을 텐데, 마지막까지 끈을 잡고 있는 이자성이 굉장히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을 아예 잘라내버린 것이 정청의 선택 권유인데... 


신세계에서 절대적인 악도 절대적인 선도 없다고 생각한다. 강과장도 이자성을 이용해먹고 주무르기는 했지만 대의를 위해 한 것이었고, 이자성도 끝까지 경찰의 편에 남고자 하며 계속 스파이 짓을 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기의 존재를 아는 모든 이들을 죽임으로써 골드문을 먹었고... 캐릭터들이 굉장히 뚜렷하기 때문에 볼 때마다 다른 캐릭터에 이입해서 보게 된다면 그 캐릭터들이 전부 이해가 되고 그 캐릭터의 행동에 동의하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장면.


[죽기 딱 좋은 날씨네.]


부하와의 면회 때 말했던 것처럼 제 무덤을 파는 일임을 앎에도 정청에게 한 방 먹은 것을 복수하기 위해 (강과장의 의도대로) 강과장이 던진 미끼를 그대로 물어버리는 이중구. 게다가 자기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데, 정청을 치는 선택을 했을 때 이미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박성웅은 정말 담배를 맛있게 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담배를 잘 폈다. 이렇게 담배를 잘 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



좋아하는 영화 ost 중 하나.